근 3년 동안은 책을 전혀 안 보고 산 것 같다.
실로 오랜 만에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꺼내 들었다.
구입 한 지는 거의 7년~8년 정도 된 것 같은데 한스가 신학교에 합격한 이후에 놓아버린 비련의 책.
보는 데, 인터넷으로 다져진 문해력 탓에 계속 책을 놓게 된다ㅋ
그냥 낚시하러 나가서 물고기를 낚았다가 전부인 내용인데
햇살이 어떻고, 어떤 나무가 있고, 구름이 어떻고, 대장간의 누구 아저씨가 어떻고, 지금 애들은 뭘 하고 있겠지, 물고기는 이렇고, 아버지가 어떤 물고기를 좋아하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내용으로 한 5장은 썼다.
이윽고 물고기를 잡아서 그리스 어를 가르쳐주신 목사 님 댁을 방문했는데, 방문해서 뭘 하기도 전에 몇 페이지가 죄다 목사 님 서재의 책은 어떻고, 목사 님은 어떤 타입의 종교인 이고, 그래서 기독교는 학문적 기독교가 있고 예술적 기독교가 있는데 이 둘의 충돌이 어떻고..
자, 그래서 요점은? 포인트는? 뭘 했다고?
라며 끊임없이 재촉하는 나를 보게 된다.
특히나 요즘 텝스를 공부하는데 이게 지문을 다 읽으면 절대 제 시간에 통과를 할 수 없는 시험이라,
강사 님이 알려주시는 문제 푸는 스킬 - 대충 연결어를 중점으로 추려낸 핵심 몇 문장으로 지문 파악하는 법,
이딴 것들을 연습하고 있으려니까 소설 자체를 행위 중점으로 묘사 전부 건너 뛰는 오만방자 독해법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까 요점만요.
글이 기니까 3줄 요약 좀 요.
바쁜 와중에 소설을 읽을 여유는 마음 속 조그만 몇 조각 밖에 없는데
성급한 내 마음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요동친다.
하필 이런 시기 잡은 책이 이리도 목가적인 전원 생활의 여유와 넉넉함을 그리고 있다니..
(랄까 시험 성공적으로 끝낸 자의 여유ㅋ)
빨리 한스를 학교로 내몰아서 폭풍우가 쾅쾅 내리치는 장면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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